지난전시

한기주 금사홍 展

2015. 03. 28 ~ 05. 28

한기주

Work - 間 ( 痕迹 Vestige )

原木版을 도끼나, 끌로 파내어 成形하고 찢기고 긁힌 자국, 파편들을 한지로 20겹 두들겨 Casting기법으로 그 흔적들을 傳寫함으로써 1차적 원상태는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원상태를 대신해서 2차적 한지 작업 결과가 자리 잡고, 1차적 상태(나뭇결)임을 주장하도록 한다.

한지의 품성을 '가지고‘ (with) 나의 삶이 개입되어 나무와 종이의 표정에 의해서 표정 짓게하고 이 표정 뒤에서 은밀히 말하고자 하는 나 자신의 여러 인격적 요소가 작용토록 함이 작품의 중요 요소이다.

부재의 현존으로서의 痕迹

현재의 시간 속에 나타난 사물들은 현재 속에 나타난 과거로서, 매순간 과거로 변환(變換)되어 나타난 현재는 그 흔적이 사물을 대신하는 不在의 現存이다.

원상(元象)을 대신해서 나타나는 나뭇결의 표정은 나뭇결이 아니라 나 자신과 작업과 만남의 사물인 이 흔적은 원상의 은닉과 은폐를 통해 드러남을 가리킨다.

흔적은 기호의 범주에도 Image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이중적 의미가 교차하는 곳 (간극)으로서 대상은 사라지고 없는 빈자리를 가리키는 부재도 아니요 현존도 아닌 부재의 현존이다.

나의 작품, 흔적의 미적 의미는 끝없이 隱閉와 隱匿 안에서' 드러남 ' 이다.

나는 찍혀지고 찢어진 나무 살점의 표정 속에서 삶의 긴장과 긴박감에 눌린 나 자신의 삶을 보게 된다 . 나를 조여오는 모든 속박과 현실들에 직면해서 그것들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힘을 도끼와 끌로 힘을 다해 나무판을 뽀개고 찝후자어 내는 행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찢어진 생생한 나뭇결을 대할 때 삶의 처절한 장면과 다시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나무판을 도끼로 찍고 끌로 파내고 상처내고 나무의 살점을 찢어 내어 보면 패어진 사실 자체는 물성이 자아내는 냉랭한 자태일 뿐 한지라는 새로운 질료의 품성에 눌림으로써 동화되고 그것이 다시 정신의 물성으로 변환됨으로써 이차적으로 나와 결부된 내재적 표정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 위를 문지르며 색을 가함으로써 나 자신의 언어가 배태되어 넌지시 침묵의 메아리로 은유 화되어 이면에 은닉 은폐되어 지는 것이다. 

어찌보면 예술행위란 자연의 질서에 인간의 어떤 표현의지로 하여금 간섭케하는 일이 곧 예술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차디찬 물성이 아니라 숨쉬고 말하는 나의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깊은 산에 홀로 서면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소리에서 불현 듯 놀라게 된다. 그 메아리 양편에 있는 산과 소리(진실)의 사이에 있을 메아리와의 관계가 신비롭다.

. 나는 왜 이런 짓을 계속 하지 않으면 아니될까... 어려서부터 그 많은 날들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뽀개 내고 찢어진 그 표정은 아픈 나의 삶의 표면을 보는 듯 하여 깜짝 놀란다.

나는 종이를 통한 작업 속에서 격렬하게 몸과 마음이 부딪침으로 해서 나 자신이 그 작업에 배어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다시 그 어떤 에너지로서 화면으로부터 이쪽으로 살아 나타나길 바라면서... 나는 대관령 산골짜기의 맑은 물에 내 얼굴이 투명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설레곤 한다. 맑은 물에 내 얼굴이 투명하게 비치게 된다는 사실은 심성과 작품의 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얼굴은 물리적 현실이고 비쳐진 그림자는 마음이 간접화 되고 은유되어진 은근한 정신의 반영일지도...

- 작가노트 중에서

금사홍

내가 금사홍 작가를 처음 본건 한 학번 선배였던 그가 남들보다 좀 빠른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해서였으니 벌써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그는 주위를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다.

“누나가 한 달에 100만 원이라도 벌어 오란다”

몇 년 전 그가 을지로에 핸드 드립 커피전문점을 열고 한 말이다. 가보니 말이 좋아 커피전문점이지 도심 속의 작은 동굴이었다. 그 동굴 속에서 숯불 로스팅으로 그가 만드는 커피의 맛은 커피라기보단 인생을 쌉싸름하게 녹여낸 막걸리 같았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그의 아내는, 작가가<내 生의 노래(The song of my Life)>를 외치면서 오랜 시간 묵묵히 작가의 길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동지적 동반자이다. 고흐에게 테오가 있었다면 금사홍에게는 그의 아내가 있다.

금사홍의 작품은 그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복잡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는 그의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금사홍의 카톡 프로필에는 ‘늘 웃자’라고 쓰여 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의 작품은 달이 아닌 손가락이다.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손의 방향을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금사홍 작가는 할 말이 참 많은 사람이다. 세상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에 대해서, 수십 년을 이야기하고 반복하면서 설득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지만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건, 앞으로 우리가 금사홍을 통해 볼 또 다른 세상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가 만들어 내는 커피 한 잔이 그냥 커피가 아니듯이그가 세상에 대고 소리 지르는 말의 의미가 ‘늘 웃자’ 로 대별되는 한마디의 큰 울림으로 그의 작업에 투영될 것이다.

작가와 그 작가가 그린 그림의 힘이 그림값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 작가 금사홍, 오랜시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기범
봉포 플라트,폼 대표